11. 10년차 지상파 뉴스 영상편집기자의 여정(feat. 취업과 이직)
지방대생의 첫 사회생활.
제 스펙은 06학번 지방 4년제 방송영상학과 학부 졸업이 전부고 흔한 자격증 하나 없습니다.
시기와 운이 좋았던 건지 졸업하는 2011년, 그 해에 종편(종합편성 채널)이 생기면서 J 모 방송국에 영상편집분야에 합격하고 공채 1기로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첫 취업 과정은 아무 사회생활 경험이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젊음과 패기뿐이었습니다. 면접 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기억나는데 "저는 편집은 요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누가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오글거리는데 맞는 말 이긴 하다.^^
첫 편집실은 일반 사무실에 워크스테이션 여러대 가져다 놓고 서버도 같은 공간에 있어 열과 소음이 심한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개국할 날은 얼마 안 남았는데 아직 방송 포맷도 못 정하고 매일매일 리허설에 테이프 방식에서 서버 네트워크 방식으로 바뀌어 서버도 에러가 자주나 P2라 불리는 메모리카드에 뉴스 편집한 리포트를 녹화해 부조종실로 여러 번 뛰기 일수였다. 그때의 영상편집팀은 여러 방송국에서 이직한 선배들과 같이 입사한 신입들 가리키랴 일하랴 사고도 참 많았다.
무사히 방송국이 개국하고 편집실도 새로 만들면서 그전보다 환경은 좋아졌지만 방하나에 두명이서 번갈아가며 편집하는 사태도 벌어지고 역시 방은 부족했다.
그렇게 한해 두 해 지나가며 근무체계도 잡히고 서소문 사옥에서 상암 사옥으로 옮기며 방송국으로써 틀을 잡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저 자신도 김정일 사망부터 세월호 참사, 두 번의 대선, 국정농단, 탄핵 등 여러 굵직굵직한 경험은 지금까지 편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직을 결심하다.
2018년 저는 이직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회사생활 7년 동안 결혼도 했고 이쁜 딸도 얻었습니다. 제 자랑이지만 동기들보다 먼저 승진도 했습니다. 그런데 뭔가 부족했습니다. 돈? 맞습니다. ㅋㅋ예쁜 딸을 낳고 회사 월급만으로는 넉넉지 않아 주말에 결혼식이나 돌잔치 촬영 알바도 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근본적인 수입을 늘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듣게 된 지상파 방송국에서 경력직을 구인한다는 소식. 오랜만에 쓰는 이력서라 뭐라 쓸지 고민했지만 제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적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영상편집기자의 모습과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길지 않고 간략하게 적었습니다.
그렇게 이력서가 통과되어 1차 면접과 실기를 치렀고 최종 면접까지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 통보였습니다.
면접 때 분위기 좋은 건 그냥 그걸로 끝이었나 봅니다...
하늘은 언제나 나의 편.
불합격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가을 어느 날. 또다시 기회가 찾아옵니다.
실패의 쓴 맛을 본 그곳에서 또다시 영상편집기자를 구인한다는 소식이였습니다. 저는 또 다시 이력서를 준비합니다. 이력서 내용은 전과 비슷하면서 약간 트렌디함을 가미한 정도? ㅋㅋㅋ이력서가 통과되고 1차 면접 때 지금 편집팀의 팀장님과 선배들을 다시 봅니다. 면접 내용은 1분 자기소개와 방송 전반에 관한 프로세서와 실기 결과물 평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로 "꼭 합격해서 구내식당에서 선배님들과 식사하고 싶습니다!"를 외치며 1차 면접도 통과합니다.
마지막 최종면접은 들어갔다 얼마 안돼서 바로 나옵니다. 전반적인 이유는 "인생은 타이밍"
이렇게 나의 이직은 성공했다. 약 8년 동안 동거 동락했던 회사 선후배들과 헤어지는 게 시원섭섭했지만 새로운 도전에 흥분됐고, 성취감에 흠뻑 젖어들었다.
인간의 삶은 복잡계다. 뭐라도 하다 보면 얻어걸린다. 난 영상편집에 관한 블로그, 카페, 유튜브 등 미약하게나마 뭔가 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 분야에 알바라도 해라. 핑계대지 말고.
미래의 나의 삶.
난 지상파 방송국이라는 이직의 꿈을 이뤘지만 여전히 욕심쟁이였고 배고프다.
다음 목표는 아직 불명확하다. 지금 세상엔 하고 싶은게 너무 많고 잘난 놈이 너무 많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회사 일이 많다.